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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인의 작가전

5회 수상작가

  • 대상. 이성경
  • 최우수상. 우민정
  • 우수상. 성민우, 임철민, 정해나

10인의 작가

성민우, 우민정, 이성경, 이영빈, 임철민, 임현경, 정해나, 주형준, 진민욱, 황규민

제5회 공모전 심사총평

  • 심사위원 김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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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화가

    화면을 어떻게 채우는가는 화가에게 가장 큰 일이며 실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알곡을 수확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각자의 조형 세계를 펼쳐가는 한국화 작가들의 작품을 심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업실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정을 다해 작업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다. 응모한 포트폴리오들 속에서 정성스레 의미를 부여해 제작한 작품들이 무엇보다 눈에 더 들어왔다.
    2차 선별된 작품들 앞에서는 녹록하지 않은 화업 畫業을 택한 작가들에게 돈독한 동지애를 느끼기도 했다. 그들에게 마음속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 작품들을 평가하는 나만의 기준은 '독창성', '성실성', '대상의 자기화', '조화' 4가지였다. 3차에서는 10인의 신작 20점, 1인당 2점의 작품에 대해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준비한 질문을 통해 열정과 진정성의 개인차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심사를 마치고, 몇몇 작가들의 작품 심사 소감을 담담히 적어 본다. 다음은 내가 눈여겨 본 작가들이다. 이성경, 이곤, 우민정, 성민우, 황규민, 오세경, 송윤주, 박형진, 정해나, 이영빈, 장재록, 이여운, 진민욱, 이은지, 김유경, 채효진, 임철민, 임현경, 주형준, 윤혜선, 정서인, 김현수, 최혜인.

    이성경은 침착, 정직, 수고의 짐을 느끼는 작업을 한다. 대상의 거리는 일정하지만 뻣뻣한 사물은 아직 춤을 추지 않는다. (깊고 깊게 스민) 매체의 자국이 만든 움직임 없는 고요가 이제 우리에게 생기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아 앞으로 더욱 궁금해진다. 화면을 가득 채운 단면의 풍경은 작가가 가진 그리기의 힘을 잘 보여준다. 목탄으로 드로잉 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듯하다. 작품에 소박한 느낌이 드는 이곤의 응시는 대상의 자기화에 들어섰다. 핸드메이드 천연재료와 새로운 매체로 성실한 손맛을 내는 작품을 한다.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한다.

    우민정은 우리 땅 흙(황토, 백토)을 바탕에 두고 작업을 한다. 유년시절 부지깽이로 회벽에 낙서하던 추억이 떠오른다. 마음 속 생각을 부유하는 이미지로 자기화한 드로잉을 자유롭게 할 줄 아는 작가다. 가로지르는 색면 위를 지나는 덩어리와 반복되는 여러 개의 선은 화면을 눈부시게 꾸미면서 동시에 힘찬 필력으로 속도감을 더해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끊임없이 비단 캔버스와 사투를 벌이는 성민우의 금분 선묘 드로잉은 풀숲, 잡초 사이사이 공간 너머의 활짝 핀 꽃과 같은 우리네 긴 인생 여정을 담는다. 조화와 균형감을 가장 주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작가다. 하나의 완성된 작품 이후 생각을 옮기는 과정에서 한지 목판/판화 작품을 진행하는 황규민은 그리기의 작품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탁월한 수묵 작업에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종단-벼락 맞은 나무>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열과 성의가 있다면 앞으로 더 많은 명작을 기대한다. 훌륭하다.

    오세경은 한지에 아크릴로 작가 특유의 집요한 극사실적 묘사와 은유를 통한 사건들을 여과 없이 들추어내며 본인의 메시지를 꾸준히 세상에 보낸다. 특출한 묘사를 바탕에 둔 작품은 매우 현대적인 품위를 지향한다. 송윤주는 성냥개비 쌓기 놀이처럼 즐겁고 명랑한 그림을 그린다. 그렇다고 가벼운 그림은 아니다. 작가가 속한 범위의 공간을 지속해온 어여쁜 기호화, 시적 추상으로 격조 있게 풀어가고 있다. 보다 심리적이고 깊은 울림의 다양한 작품을 다수 기대해 본다.

    박형진은 화면 가득 가볍게 떠오르는 숲의 일부, 땅의 일부에서 응축된 생명들의 표정을 선과 점묘의 레이어 된 회화로 잘 소화하고 있다. 숲 속 깊은 곳의 호흡을 중첩된 먹선으로 표현해 평범하지 않은 기운의 흐름을 담은 작품으로 보상받는 것 같다. 일 년의 숲<July to June>작품은 정말 독창적이다.
    정해나는 매우 차분한 먹을 사용한다. 바람이 없는 고요한 호숫가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예민한 층위의 감미로운 표현은 오랜 시간 축적된 조형 훈련의 유산인 듯하다. 때론 내 것이 아닌 것도 바라보면서 조형적 혼합을 시도하면 보편적 이야기의 호소로 분명히 확장될 것이다.

    이영빈은 자신만의 선의 세계를 갖고 있다. 먼 하늘 위에서 때로는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세상과 집, 사람, 나무, 사물을 그리고 있다. 마음속 여백엔 항상 자화상 같은 독특한 그림을 그린다. 이제 자기화 이후 더욱 다양한 선상의 작품을 기대한다. 장재록은 철처럼 견고한 멋진 현대 산수화를 지속적으로 그려온 작가다. 대상 속으로 들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제는 확장된 캔버스 작업으로 보다 적극적인 물성이 보이는 작품으로의 전환도 필요해 보인다.

    이여운은 선과 선, 선들과 선들이 연결되어지면서 만들어지는 건축물의 순수 에너지를 그린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형상의 심미성은 또 다른 이여운표 양식미를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더 부드러운 접근을 통해 따스한 서정을 느낄 수 있길 기대한다.

    진민욱의 비단 위에 먹과 채색으로 재구성한 마을과 정원 속 동식물들은 생기 가득하다. 작가의 붓을 통해 그려진 꽃들은 양분을 충분히 머금고 잎사귀는 햇살을 받아 행복하다. 화면 전체에 생동하는 색의 기운은 옹달샘처럼 맑은 작가의 마음에서 나오는 듯하다. 답답하고 아픈 인간,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의 모습을 형상화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을 하는 이은지는 특별한 조형감각을 가졌다.
    한 전시공간에서 오브제와 함께 작품이 있을 때 극대화된 힘이 있는 메시지를 얻는다. 화면을 신체 크기 이상으로 확장해서 하는 독립된 대작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김유경은 솜털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수묵을 그린다. 그러나 방황하는 생각이 바람과 공기, 꽃향기를 태우는 햇볕까지 화선지 위에 드라마틱한 흔적을 남긴다. 오랫동안 길 위에 혼자 남아 있는 자아를 발견하지만 담담한 묵향이 위로를 준다. 큰 화면에 종합적 기운을 내뿜는 작품을 기대한다. 채효진의 그림은 한낮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밤의 별이 되어 마음의 평안을 준다. 밤하늘 풍경에서 아마도 휴식을 얻고 모든 게 드러나는 대낮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게 아닐까? 그간 작품의 흐름이 작가 시선의 경험치와 일치하여 자연스럽고 진실되게 발전하고 있다.

    임철민은 장마철 황토 빛 강물 위에 떠내려가는 여러 부산물처럼 흐르는 먹물 위에 삶의 의문과 질문, 희망을 가득 채운 뜻밖의 여정을 담은 그림을 그린다. 솔직한 마음을 담은 수묵의 힘은 위대하고 강하다. 근작인 <주관적인 풍경- 우리의 안산>이 그렇다. 이제는 심적으로 가벼워졌으면 한다. 임현경은 이웃하는 가까운 사물들에 애정을 두고 정원을 가꾼다. 파랑새가 안전하게 보호받는 숲의 장막 안으로 뜨거운 햇살과 차가운 바람을 가리는 장막을 치기도 한다. 따스한 위로가 그리운 사람들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

    주형준은 자신의 그림을 '예쁘다'라고 표현했다. 정말이지 그의 서사적 수묵화는 매우 디테일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리듬 속 꿈틀대는 세계가 묵향으로 충만히 채워진 화면으로 완성된 작품은 이제 날카로운 칼날을 기다린다. 도려내져 벽면에 다른 의미의 섬들로 나눠진 사이 여백을 남기고 붙여진다. 이 때 예상된 기준을 초과한 벽면은 신작이 되고 또 다른 형상을 감상하게 된다. 멋진 공간의 협업을 기대한다. 윤혜선은 미지의 보랏빛 세상 어디쯤에 조그만 생명들이 움트는 자리를 그리는 작가다. 어떤 시간대를 담은 빛깔로 비어진 여백을 채워 '쓰인 어느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감성적인 채색 환경에 주목할 때 그 어느 자리도 돋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서인은 소멸과 생성의 지속하는 자연대상(숲, 산, 섬, 파도)을 한지를 태우고 콜라주기법으로 종합적인 화면을 구성해가는, 생명력 강한 작품을 만든다. 이제 추상적이고 함축적인 이미지화도 기대할 수 있겠다. 김현수는 네모난 밭들과 삼나무 아래 고부랑길이 보이는 풍경 속에서 자랐다. 유년시절 고향 제주의 자연을 유아의 마음으로 담는 채색그림을 그린다. 내면의 풍경, 기억 저편의 단순화된 이미지로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 발색이 강한 매체의 적극적인 시도로 좀 더 선명히 반응하는 주제를 발견할 수 있겠다.

    최혜인은 혼합매체를 통해 섬세하고 가녀린 결과 흐름을 갖고 먹거리 재료에 시선을 둔, 유기농같이 안전하고 건강한 발상의 작업을 한다. 시선을 접사하여 토마토나 수박, 브로콜리 등을 명랑하게 재현하는 즐거움이 가득한 그림을 그린다.

    이번 공모전 수상작가들에게 심심한 축하의 말을 전한다. 또한 낙담했을지 모를 작가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언제든 각자가 하는 현재의 '특별한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더욱 정진하길 소망한다.
  • 심사위원 서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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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제 5회를 맞이하고 있는 광주화루 공모전은 20~40대 청년 작가군들이 활발하게 지원함으로써 현재 한국화단의 젊은 동향을 가늠하게 해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참여한 작가들의 경우, 연령대별로 당면한 과제들이 조금씩 달라보였는데 20대 작가들은 의욕적으로 작업을 진행하나 아직 구사하고자 하는 조형언어가 다소 불안정한 상태를 드러내 보이는 경우가 잦았고 30, 40대 작가들은 가장 왕성한 활동들과 함께 각자의 작업적 특성이 비교적 일관된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정체되고 동일한 접근 방식의 기계적 반복이 관찰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은 한 작가가 자신의 작업세계를 점진적으로 구축해나가는 자연스러운 여정이라 생각하며 화업畫業의 길 위에서 각자가 자신의 당면 과제를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길 기대한다.

    이번 광주화루 심사에서 흥미로웠던 점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한국화의 전통과 미래를 담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본 공모전에 한국화를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들의 작품이 접수되기 시작했다는 점으로 이것이 일회적 현상일지 아니면 앞으로 지속되며 강화될 현상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또 하나는 공모전 지원 시 모든 지원자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화의 개념을 간단히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하는 요건이 새롭게 추가된 점인데 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공모전에서 한국화라 지칭하기 모호한 작품들이 등장하는 현상에 대한 주최 측의 깊은 고민의 결과임과 동시에 한국화의 전통과 맥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광주화루의 강한 의지를 다시 한 번 분명히 선언하는 행위로 이해되었다.

    문화예술에 있어 지배적인 정서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모해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으나, 항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영역이 있는 반면 전통적 역사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영역의 경우는 그저 새롭기만 한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고전적 가치를 품고 있는 새로움을 이끌어내야 하는 과업을 추가적으로 부여받게 된다. 태생적으로 한국화는 바로 이런 흐름 위에서 여타의 조형예술과는 구분되는 특수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예술로서의 보편성'과
    '전통예술로서의 특수성', 이 보편과 특수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한국화의 지속적인 화두가 되는 셈인데 최근 들어 이 관계의 주도권은 확실히 '예술로서의 보편성'이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재료나 표현기법들은 작가의 창의성을 묶는 족쇄처럼 인식되고 동양미학적 인식과 관점은 지루한 고전강독 속 사어死語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경향성은 지원자들이 작성해 제출한 한국화에 관한 인식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화에 대한 자기고민이 전무해 보이는 경우도 있었고, 동양적 미감이나 미적 태도를 자신의 작업에 견강부회牽强附會적으로 억지스레 연결시키는 경우도 있었으며 전통에는 너무 많은 제약이 따르기에 본인의 작업은 그 영역 밖에서 자유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미리 밝히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화단의 중추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젊은 작가들의 전통에 대한 인식은 아쉽게도 빈약하고도 허술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얻어진 체화體化된 서술들이라기보다는 자료조사를 통해 수집되어진 내용 또는 서면書面 지식들을 적절히 엮어 나열하는 느낌이 강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전통회화에서의 '여백'이라는 개념을 현재 자신의 주관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이를 새롭게 조형화 해나가려는 주형준의 작업 태도와 동양에서 뛰어난 화가의 명화를 근간으로 제작된 화보畵譜를 교재 삼아 그림을 가르치는 고전적 교육방식에서 옛 것을 이어나가는 태도가 교조화敎條化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오늘날에 빗대어 보여주려는 황규민의 시도는 참신했으며 돋보였다.
    이들의 작업이 지금 완숙된 경지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으나 옛 그림들에서 화면을 구성하는 프레임만을 빌려 온다던가 또는 고화古畫 속 소소한 요소들만 마치 소품처럼 차용해 자신의 작품 안에서 부분적으로 활용하는 그림들이 빈번히 그려지고 있는 현재 상황에 비춰본다면 고전을 대하는 이들의 작업 태도가 안정적으로 구축되기만 한다면 한국화 창작에 있어 흥미로운 담론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통적인 바탕재 중의 하나인 비단이 가지고 있는 명징하고 부드러운 색감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도시의 풍경을 담담히 담아내고 있는 진민욱, 분채와 금분을 이용하여 정통 진채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채색화 특유의 강렬한 색감이 장식적으로 기우는 부분을 적절히 제어하며 잡초의 형상을 빌어 평범한 이들의 삶에 대한 예찬을 담아내는 성민우, 동양회화의 특징인 다변적 이동시점을 압축해 해학적인 감성의 풍광으로 펼쳐 보이는 이영빈, 먹의 농담과 번짐을 분방하게 다루며 개인의 시점으로 주변 풍경의 조각들을 재구성해 도시 속에서 흘러가는 삶의 면면을 특유의 먹맛에 실어 위태롭게 표현하는 임철민, 벽화기법을 활용해 토분이 가지고 있는 질박한 느낌의 바탕 위에 절제된 도상들을 리듬감 있게 감각적으로 채워가는 우민정, 작품 구상에 있어 개념적 접근과 감성적 접근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는 정갈한 조형언어가 돋보이는 정해나, 궁중장식화나 민화에서 볼 수 있는 화훼화적 특성을 바탕에 깔고 도시의 인공자연인 정원의 모습을 마치 무대의 배경처럼 독립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임현경의 작업도 긍정적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이번 대상 수상자인 이성경의 경우는 목탄과 함께 어우러지는 강한 색감으로 화면 전체를 꽉 채우는 밀도 높은 구성방식을 주로 활용하고 있는데 무수한 붓질로 압착壓着된 노동의 흔적에서는 그림을 대하는 진중한 태도가 읽혀진다. 이성경의 수상에 사족을 덧붙여 첨언하자면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이 서울 중심의 기형적 구조로 불균형하게 굴러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영남지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가면서 작업하고 있는 그의 행보는 더더욱 응원과 격려를 받을 만하다.

    대한민국의 예술은 이미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경로독점이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나라로 유입되어 들어오는 예술에 있어서의 신경향 역시 미국과 유럽의 몇몇 국가 중심으로 이미 또 다른 경로독점이 이루어진 상황이다. 결국 경로독점으로 유입된 서구 중심의 예술경향이 서울권을 중심으로 집중 재생산되고 있는 셈인데 이러한 양상의 지속은 결과적으로는 특정 경향성의 만연漫然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광주화루 공모전 운영진이 가지고 있을 또 다른 고민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광주화루가 예향이라 불리는 광주를 거점으로 운영되는 공모전임에도 불구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배출되는 수상자들 대다수가 서울지역 출신 작가들 중심으로 채워지고 있는 상황은 우리나라의 화단이 지나치게 서울권 중심으로 기형적인 모양새로 굴러가고 있다는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서울 과밀집, 과포화 현상은 비단 예술계만의 문제도 아닐 뿐더러 정치, 경제, 교육 등과 문화의 상관관계를 이해한다면 이 역시 예술영역에서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결코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형성,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바로 그 인식에서부터 자기 각성과 변화에 대한 시도가 움틀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노출이 만성화되어가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그 불합리함을 마치 자연스러운 것인 양 내재화시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무뎌진 촉수를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 끊임없이 깨어있고자 하는 자각의 노력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진다 하겠다.

    널리 확장된 인터넷을 기반으로 전 세계는 이미 국가의 경계를 가볍게 넘어서 각 분야에서 다양한 교류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초연결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이러한 움직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지역의 경계, 국가의 경계, 문화의 경계, 세대의 경계가 빠른 속도로 약화되고 있는 대변화의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가 갖추어야 할 태도는 바로 오랜 기간 동안 우리 안에 내재화되어 왔던 개도국 마인드, 무엇인가를 롤모델 삼아 부지런히 그 그림자를 쫓아가고자 하는 맹목성을 털어내고 이른바 '중심 이데올로기'로부터 심적으로 벗어나려는 자세이다. 중심은 절대적인 누군가에 의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그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동시에 주변부의 다양성에 대한 동등한 존중의 시선을 함께 장착할 필요가 있다.

    기실 이러한 시선은 비단 미술계뿐만 아니라 지금의 한국화에게도 절실히 필요하다. 가장 치열하고도 뜨겁게 창작의 열정을 피워 올리고 있는 많은 청년작가들이 한국화의 영역 밖에 자신의 작업을 이른바 트렌디한 경향으로 탈바꿈시켜줄 수 있는 신세계가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내려놓고, 스스로를 마이너한 위치에 자발적으로 내려놓는 왜소한 자기인식을 건강히 극복하면서 민감하고도 열린 존중의 시선으로 한국화의 의미와 그 상징적 가치를 다시 찬찬히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한국의 예술지층을 더욱 풍성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공모전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탄탄히 다져나가는 여정에서 거쳐갈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여기에서의 평가는 일회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성장 가능성이 보인다는, 현재에는 구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예측에 불과할 뿐이다. 모든 가설이 항상 사실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듯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지원자 모두 이번 심사의 결과를 절대적인 평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저 스스로 심기일전할 수 있는 작은 기회로 여기길 바란다. 뿐만 아니라 광주화루의 꾸준한 성장과 함께 책임과 지분이 있는 이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오랜 기간 정체되어 있는 한국화의 오랜 난제들도 하나씩 풀려나가길 기대한다.
  • 심사위원 이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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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대학교 교수

    한국화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광주화루가 5회 째를 맞이하며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주에서 한국화의 전통과 맥을 잇고 진흥시키기 위해 개최되는 광주화루 공모전이 침체된 한국화의 위상과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길 기대해 본다.

    한국화의 궤적은 한국 근현대 굴곡의 시대에 형성되었다. 급속한 서구화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확산은 전통의 단절, 가치관의 충돌, 정체성 상실을 가져왔고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화는 변화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동양화'와 '한국화' 명칭의 혼재, 서구미술의 본격적 유입에 따른 이론적 근거가 빈약한 추상화와 형식실험, 1960년대 신진그룹의 반 전통의 전위적 도전, 일제 잔재 청산과 전통성의 회복, 국제화에 따른 다원화된 양식과 융합 등 큰 변혁을 겪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체성과 결부된 문제와 한국화의 침체와 위기에 대한 질문이 반복되었다. 한국화 침체와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술계의 내부적 요인도 있지만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로부터 비롯된다. 이는 전통예술교육의 무관심, 서구문화에 경도된 대중들의 한국미술에 대한 저조한 인식과 소비자의 취미와 주거문화의 변화, 서구미술이 주도하는 편향된 미술시장과 한국미술의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정교화 할 수 있는 전문가의 부족 등에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축적된 고질적인 우리 미술계의 한국화 문제를 단기에 해결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진지한 논의와 깊이 있는 성찰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화의 전통적 시원에서 고유한 한국성을 발굴하여 현재에 주체적으로 어떻게 대중성을 확보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성에 대한 질문의 결과물인 참여작가들의 출품작에서 동시대 한국성에 대한 고뇌와 현대적 감성을 확인하고 각자 독창적인 창작방식을 창안하여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전통적인 미의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와 재료와 기법실험의 형식적 언어에서 한국화의 고유성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경향을 접했다. 중심이 와해되어 장르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다양성이 혼재된 현대미술에서 작가들은 한국화의 근원적 전통성과 관념적 틀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개인적 경험과 동시대성에 집중하여 독자적인 개성을 표출하며 고유한 회화방식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참여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은 예술성, 독창성, 발전가능성을 기준으로 과거의 작품경향을 볼 수 있는 1차 포트폴리오와 현재 작가의 기량을 점검할 수 있는 2차 미발표 신작을 평가하며 심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3차 심층면접은 한국화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독자적 표현방식, 앞으로 창작계획 등에 대한 질문을 통해 작가 의식과 미래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며 최종적으로 마무리하였다.

    이성경은 개인의 일상적 풍경 체험을 민감한 감각으로 포착하여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그림자 풍경과 현실 속 반사된 비현실적 허상에 대한 실존적 사유와 내면의 그리움으로 저장된 우울한 감성을 담아낸다. “풍경은 사건의 목격자로서 증언자”라고 이야기한 작가의 말처럼 바라보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관계성과 풍경과 교감하는 작가의 감성적 내면을 표출한다. 담백한 색조의 한지 위에 건식재료로 반복적 그리기와 손으로 문지르며 지우기를 통해 풍경을 재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고유한 결과 울림이 있다. 예민한 감성의 촉수로 순간적 풍경을 포착하여 작가의 심연과 연결하고 모필이 아닌 목탄과 손으로 내면의 심상과 외부적 풍경의 접점을 찾아 촉각적 질감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작품에서 풍기는 고독한 분위기는 심리적 감정의 변화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탄탄한 구성력, 빈틈없는 화면 장악력, 집요한 그리기와 한계를 실험하는 작가의 진중한 태도에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벽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독창적 벽화기법으로 표현한 우민정의 그림은 가장 인상적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기억의 중층적 구조와 시간의 축적과 은유적 상상력이 반영되어 있다. 추상성이 강조된 시리즈 작품 < I TRIED >의 치밀한 공간 구성력과 정제된 색채감이 돋보인다. 흙과, 종이 안료 등 물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동양적 감성이 배어나는 감각적 색채 표현, 새기고 긁어낸 흔적의 느낌을 찾아가는 손의 리듬감과 움직임에 묘한 흡입력이 있다. 평면적으로 도식화된 형상, 곡선과 기하학적 선의 교차, 달의 표면을 상상하며 표현한 구름과 물결을 연상하게 하는 패턴, 단순화된 인간 형상의 반복적 나열 등 빈틈없는 화면 구성과 감각적 표현이 탁월하다.

    전통회화의 형식과 서사구조를 활용해 창작을 하는 정해나는 소외된 사람들에 관련된 이야기를 이미지로 옮기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최근의 내러티브적 개념을 활용한 메타포 작업은 글과 그림을 하나의 서사 구조로 엮어낸 것이다. 세상의 주변부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약한 존재의 모습을 동양회화의 형식으로 기록하고, 다양한 고전회화를 차용함으로써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문화권에서 생겨나는 여성성에 대한 문제를 작품의 소재로 다루고 있다. 초현실적 분위기가 감지되는 몽환적 형상을 통해 무의식이 표출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정제된 수묵표현으로 형상을 드러낸다. 현대적 소재를 전통적 형식에 담아 재해석하고 상상력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재구성하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성민우는 식물의 이미지에 인간의 삶을 연관시켜 비유적으로 암시하는 작품을 하고 있다. 가족의 군상과 부부 형상의 실루엣에 가득 채워진 식물의 형태는 은유적 상징성을 보여준다. 일관된 소재로 다루고 있는 식물은 생명과 관계에 대한 사유로 생장과 존재의 지속성, 자연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는 자연 생명의 원형과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단순한 색조의 평면적 배경에 다양한 색채의 선묘로 세밀하게 그려낸 식물은 성민우가 보여주고자 하는 생명의 에너지를 표출하고 있다.

    수묵의 재료적 장점을 극대화하여 도시 풍경을 담아내는 임철민은 현실적 경험을 세련되게 그려내고 있다. 어두운 골목길 희미한 불빛은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 듯하다. 주관적 풍경 시리즈는 여행에서 경험한 특정한 위치에서 수집된 장소를 포토몽타주처럼 조합하여 재구성하여 풀어낸 것이다. 그리고 현지인들의 인터뷰를 기록하고 타인의 경험을 시각적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새로운 개념적 시도가 독창적이다.

    이번 광주화루 공모전 심사는 진중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역량 있는 한국화 작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을 보고 현대 한국화의 스펙트럼을 살필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심사를 마치며 개인적으로 심사과정에서 주목했던 작가가 수상작가로 선정되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심사위원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 개별적 심사결과를 종합하다 보니 참신하고 수준 높은 작품이 근소한 점수 차이로 순위 밖으로 밀려난 듯하다. 최종 수상자로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황규민, 주형준, 이은지, 이영빈, 김정욱 작가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번 공모에 참여하여 치열하게 창작한 작품을 출품해준 작가들의 열정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광주에서 개최하는 화루 공모전에 아쉽게도 이 지역작가가 10인의 작가에 포함되지 못한 점에 대해 무거운 마음으로 책임감을 느낀다. 광주화루의 취지에 걸맞게 광주가 한국화 중심이 되고 예향의 광주문화중심도시를 대표하는 작가가 광주화루를 통해 탄생하기를 기원해 본다.
  • 심사위원 임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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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팀장

    지난해 12월에 시작한 온라인 포트폴리오 심사와 2월의 출품 작품심사에 이어 지난 3월 작가인터뷰를 끝으로 제5회 광주화루 공모전 심사를 마쳤다. 3차 심사에서 선정된 10명의 작가들
    중 인터뷰를 통해 5명의 작가를 최종 시상자로 확정하였다.

    공모전이라는 오픈 경쟁은 한 작가의 긴 예술활동을 놓고 보면 작은 동기부여이자, 자기와의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에 대한 외부의 평가를 받는 자리이다. 당연히 수상작가는 이를 통해 격려 받고 작품활동의 동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기나긴 여정의 짧은 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광주화루 공모전의 2, 3차 심사에 오르지 않은 작가들 중에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의 활동도 지켜볼 일이다. 다만, 그 중에 어떤 특정 작가가 떠오르게 하는 작품의 형식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공모전의 심사평을 의뢰받고 심사평에 대한 내용을 검색하다가 1969년 《중앙일보》에 소개된 공모전 관련 기사를 찾았다.

    “..... 입선작 및 추천·초대작가 등 6백여 명이 참가한 미술계 최대의 잔치 「국전」은 심심찮은
    화제의 전당. 매일 1만여 명이 들끓는 전시장에서 가장 화려하고 관람객의 관심을 모으는 곳은 공예실...” (《중앙일보》 1969년 11월 8일)
    “마지막 종합전이 될지도 모를 22회 국전은 출품수도 1백70여 점이 늘어났고 그 수준에 있어서도 향상되었다는 예년과 천편일률의 심사평. 그러나 두드러진 증가는 서예와 서양화 비구상이다. 그중 서예의 경우 4백 점이나 출품됐는데 막상 입선은 5분의 1도 채 못되는 75점이며 서양화 비구상의 경우에는 출품 2백74점 가운데 9분의 1밖에 안 되는 32점이 입선된 것이다. 구상계 점차 감소 추세 '새마을 소재 작품 많아' 안이한 제작 태도는 여전 이런 현상은 근래의 미술계 추세를 보이는 한편 안이한 범작도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 된다. 그래서 도상봉 심사위원장은 종래 부문별 입선 점수 안배에 대해 고려해야겠다는 암시적인 말을 했다. 도 위원장은 또 출품 경향에 대해 『금년도의 두드러진 특징은 현실 시대 감각에 부응하여 새마을을 소재로 한 작품이 다수 출품됐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22회 국전 심사 결과를 보고 1973년 10월 2일)


    오래된 이런 기사 속에서 인상적인 것은 숫자다. 6백여 명, 1만 명, 170여 점, 4백점 등등
    1981년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매년 이런 기사들이 전년도와 비교해서
    게재되었을 것이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이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공모전을 통해서만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긍정, 부정의 논란 속에서도 공모전의 역사는 그 시대의 화단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역사의 한 장면인 것만은 사실이다.

    오늘의 '화루 공모전'은 무엇을 기록하고 말할 수 있을까. 분야를 '한국화'로 한정 지은 '화루畵壘'는 전통예술의 계승을 지향한다. 명칭의 유래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서화를 하는 제자들이 모여 솜씨를 겨루고 스승의 품평을 받은 모임인 회루繪壘에서 회를 화로 바꾸어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품평을 받기 위해 모이는 모임이라는 데에 방점을 두고 싶다. 단순히 순위를 정하는 것이 아닌 품평회의 장이었고 소통의 자리였을 것이다. 그때와는 다른 형태로 동시대 한국화 작품을 펼쳐 보이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가 아닐까 한다.

    전통시각예술의 역사인 수묵화는 끊임없이 주변국가와의 교류와 문화유입에 영향을 받고 그 시대의 미학과 시대정신을 반영하면서 변화해 왔다. 일제 식민지를 겪으면서, 크게 왜곡되고 단절된 과거 때문에 아직까지도 혼란스러움이 남아있지만, 지금 전통회화 방식을 익히고 연구하는 작가들의 작품 그대로가 현대 한국화임을 인정해주고 싶다. 1980~90년대 작가들이 겪었던 한국화라는 의무감과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그들이 하는 그림이 한국화의 형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해주고 싶다. 작가 인터뷰를 통해 선정된 작가들이 전통회화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있으며, 본인 내면의 감성을 표현하고자 표현기법에 대한 연구와 수련과정에 상당한 깊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선 시대 예술의 주류였던 수묵화의 전통과 실용, 기복, 생활예술과 결합된 벽화나 채색화의 범주까지를 확장하여 작품의 완성도에 주목하여 작품선정의 기준을 삼았다.
    1차 포트폴리오 심사를 통해서 참신한 발상의 수묵화와 옛 것의 재현 작품,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내어 작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자연과 명상, 정신적 힐링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지금 시대에 오히려 순수한 수묵만으로 작가의 개성을 드러낸 몇몇 작가와 작품들은 앞으로 시대적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꼭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차 심사를 통해 실제로 만나본 시간은 작가의 붓질과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기회여서 작가 선정에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화루는 한국화를 지향한다. '한국화는 무엇이다'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서구문화의 유입과 지배에 대한 대항적 의미로서의 한국수묵과 전통을 계승하는 시각이 아닌 고유의 언어와 문자가 존재하고 변화하고 발전하듯이 고유의 시각예술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발전을 논의하는 장, 그러한 작가들의 논의가 모이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화를 규정하기보다는 그 과정에 있음을 인정하고 앞선 문화와 전통을 지켜내고 이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 있는 일이자 지금 시대의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화루 공모전'이 해를 거듭할수록 전통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하면서 작가의 시대의식을 담아내는 한국화 작가들의 논의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