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미술관 관장
광주은행에서 주관하는 광주화루 공모전이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이했다. 제8회 광주화루 심사는 1차 온라인으로 진행된 포트폴리오 심사, 2차 신작 실물 심사, 3차 작가 면담 등 세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 심사에서는 20명, 2차 심사에서는 10명을 선별했고, 3차 작가 면담을 거쳐 대상 1명, 최우수상 1명, 우수상 3명, 입선 5명을 선정했다. 입선 5명에게 상금을 부여하는 방식이 올해 처음 도입되었다.
심사위원은 한국화 작가 2명, 미술 이론가 2명 등, 4명으로 구성되었다. 심사 방식도 독특하다. 세 차례의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심사위원 4인의 교류가 철저히 차단된다. 즉 심사가 끝날 때까지 동료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광주화루가 선택한 남다른 방식일 것이다.
광주화루는 심사 기준이 분명한 공모전이다. “한국화의 미래 지향적 비전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작가로 발전 가능성을 평가”해야 하며, “한국화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은 0점” 처리하라는 지침이 분명하게 공지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모전이 매체와 상관없이 평가를 진행하거나 일부 공모전이 한국화, 서양화, 입체 등 장르를 구분하여 수상자를 결정하는 반면, 광주화루는 오로지 한국화를 심사 대상으로 한다. 이에 본 심사자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작품 평가를 진행했다.
1. 재료의 선택과 그 숙련도
앞서 언급했듯이 광주화루는 한국화 공모전이다. 그렇다면 한국화와 타 분야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필묵이라는 재료라고 판단된다. 곰브리치(E. H. Gombrich, 1909-2001)는 '예술과 환영 Art & Illusion'에서 미술 창작의 시작 단계를 주어진 재료의 활용 행위로 보았다. 선택된 재료가 작가의 의지를 반영하여 시각물을 탄생시키고, 그 의지가 창작 목적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작업 단계에서 물성이 부여하는 시각성, 그 결과물에 내재되는 유전적 특질, 이에 반영된 역사성과 감상하는 관람객의 시선까지, 재료는 창작의 시작과 끝을 그림자처럼 동행한다.
이번 출품작을 정리해 보면 지필묵을 충실하게 다룬 작품, 지필묵을 토대로 다른 물성을 도입한 작품, 지필묵에서 완전히 벗어난 작품으로 분류되었다. 세 가지 항목 가운데 지필묵에서 완전히 벗어난 작품은 주최 측의 지침에 따라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재료의 성질을 제대로 숙지하고 이를 토대로 본인의 창작 의도를 잘 드러낸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2. 창작의 기본기와 독창성
작품 평가의 중요한 심사 기준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있다. ‘무엇을’ 즉 소재에서는 작가의 창작 의도가 반영된다. ‘어떻게’ 즉 방식에서는 작가의 표현 능력이 발휘된다. 재료를 다루는 능력뿐만 아니라 소재와 표현 방식이 분명해야 결과물의 우수성이 입증된다. 이번 출품작을 면밀히 살펴보니, 소재와 표현 방식이 분리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즉 ‘무엇을’에만 몰두하거나 ‘어떻게’에만 집중한 것이다. 본 심사자는 소재와 표현 방식이 서로 부합하여 독자적 조형성을 보여준 작가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즉 작가가 원하는 바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능력을 평가한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유심히 관찰한 점은 작가의 독창성(獨創性, originality)이다. 독창성이란 새롭거나 기발한, 창조 또는 발명 작품의 면모를 뜻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독창성이 모든 예술의 감상과 평가에 중요한 기준이지만, 어찌 보면 독창성만큼 애매모호한 용어도 없을 것 같다. 그리하여 본 심사자는 과거의 유산을 토대로 작가 고유의 조형성을 표출한 작품을 물색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이 인간 메커니즘이 창조하는 시각물에도 인간의 보편성과 역사성이 존재한다. 다만 이를 어떤 방식으로 발현하여 개인의 독자성을 창출하느냐가 예술 창작의 관건이다.
3. 정체성 모색과 변화와 발전 가능성
무언가를 창작하는 작가가 지닌 가장 큰 부담감은 변화와 발전이다. 남과 다르게도 해야 하지만 이전 작업과도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늘 따라다닌다. 차별성과 변화,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그리고 동시대 미술에서 본인 작업이 논의되기 위해 일부 작가들은 시류와 유행을 따르기도 하고 아예 이를 외면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지필묵을 다루는 한국화 작가들에게 적용되는 직면 과제이다. 언제나 전통과 현대라는 두 개의 키워드 사이를 왕래하며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에 본 심사자는 작품 포트폴리오를 면밀히 검토하고 직접 면담을 통해 작가가 작업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작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무엇인지, 앞으로 추구하려는 점은 무엇인지 추적했다. 각자의 personality를 제대로 파악한 상태에서 진심을 다해 표현하고 싶은 바를 화면에 창출해야 정체성이 분명하되 호소력이 있는 작품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기준으로 심사를 마무리 한 상황에서 광주화루에 다음과 같은 평가 방식을 제안한다. 첫째, 심사위원이 심사 과정에서 서로 소통하는 방식을 일부 도입해야 한다. 1차 온라인 포트폴리오 심사는 개별적으로 진행하더라도 2차 신작 실물 심사, 3차 작가 면담, 최종 선정 단계에서 최소 1회는 심사위원이 전원 집합하여 수상자를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각각 심사위원이 치우친 사고를 하거나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고 점수 배당의 편차가 클 수도 있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올해부터 '3년경과 이후 재응모 가능‘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기 수상자라도 과거 3년 동안 출품 경력이 없는 작가는 출품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올해에는 과거 최우수상, 우수상뿐만 아니라 입선 수상작의 출품작이 1차 온라인 포트폴리오 심사, 2차 신작 실물 심사를 통과한 사례가 발생했다. 따라서 내년에 해당하는 9회 광주화루부터 ‘3년경과’ 항목을 ‘5년경과’로 변경하거나, 우수상 이상 수상자는 출품을 제한하는 규정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한국화는 한반도의 질곡의 역사와 항상 동행 해온 미술 장르이다. 해방 이후 민족성 수립과 현대성 모색이라는 화두를 해결해야 했고,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동시대 미술로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이번 광주화루에 출품된 작품에서도 작가들의 고민과 그 실체가 고스란히 목격되었다. 창작에 정답과 오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창작 주체가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면서 진솔한 마음으로 화폭에 옮기는 과정만이 존재한다. 아무쪼록 광주화루가 진정한 창작 주체를 발굴하고, 경계와 범주가 희미해진 한국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제도로 더욱 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