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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인의 작가전

수상작가

  • 대상 | 김정옥
  • 최우수상 | 박세진
  • 우수상 | 김홍성, 박형진, 전지홍

10인의 작가전

  • 2025.04.01 - 05.31

  • 광주은행 본점 1층 KJ상생아트홀

  • 기민정, 김정옥, 김홍성, 박세진, 박형진, 오세경, 전지홍, 최혜연, 함수지, 허용성
  • 공모전 논고

    • 심사위원 송희경
    •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광주은행에서 주관하는 광주화루 공모전이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이했다. 제8회 광주화루 심사는 1차 온라인으로 진행된 포트폴리오 심사, 2차 신작 실물 심사, 3차 작가 면담 등 세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 심사에서는 20명, 2차 심사에서는 10명을 선별했고, 3차 작가 면담을 거쳐 대상 1명, 최우수상 1명, 우수상 3명, 입선 5명을 선정했다. 입선 5명에게 상금을 부여하는 방식이 올해 처음 도입되었다.
      심사위원은 한국화 작가 2명, 미술 이론가 2명 등, 4명으로 구성되었다. 심사 방식도 독특하다. 세 차례의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심사위원 4인의 교류가 철저히 차단된다. 즉 심사가 끝날 때까지 동료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광주화루가 선택한 남다른 방식일 것이다.
      광주화루는 심사 기준이 분명한 공모전이다. “한국화의 미래 지향적 비전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작가로 발전 가능성을 평가”해야 하며, “한국화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은 0점” 처리하라는 지침이 분명하게 공지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모전이 매체와 상관없이 평가를 진행하거나 일부 공모전이 한국화, 서양화, 입체 등 장르를 구분하여 수상자를 결정하는 반면, 광주화루는 오로지 한국화를 심사 대상으로 한다. 이에 본 심사자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작품 평가를 진행했다.

      1. 재료의 선택과 그 숙련도
      앞서 언급했듯이 광주화루는 한국화 공모전이다. 그렇다면 한국화와 타 분야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필묵이라는 재료라고 판단된다. 곰브리치(E. H. Gombrich, 1909-2001)는 '예술과 환영 Art & Illusion'에서 미술 창작의 시작 단계를 주어진 재료의 활용 행위로 보았다. 선택된 재료가 작가의 의지를 반영하여 시각물을 탄생시키고, 그 의지가 창작 목적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작업 단계에서 물성이 부여하는 시각성, 그 결과물에 내재되는 유전적 특질, 이에 반영된 역사성과 감상하는 관람객의 시선까지, 재료는 창작의 시작과 끝을 그림자처럼 동행한다.
      이번 출품작을 정리해 보면 지필묵을 충실하게 다룬 작품, 지필묵을 토대로 다른 물성을 도입한 작품, 지필묵에서 완전히 벗어난 작품으로 분류되었다. 세 가지 항목 가운데 지필묵에서 완전히 벗어난 작품은 주최 측의 지침에 따라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재료의 성질을 제대로 숙지하고 이를 토대로 본인의 창작 의도를 잘 드러낸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2. 창작의 기본기와 독창성
      작품 평가의 중요한 심사 기준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있다. ‘무엇을’ 즉 소재에서는 작가의 창작 의도가 반영된다. ‘어떻게’ 즉 방식에서는 작가의 표현 능력이 발휘된다. 재료를 다루는 능력뿐만 아니라 소재와 표현 방식이 분명해야 결과물의 우수성이 입증된다. 이번 출품작을 면밀히 살펴보니, 소재와 표현 방식이 분리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즉 ‘무엇을’에만 몰두하거나 ‘어떻게’에만 집중한 것이다. 본 심사자는 소재와 표현 방식이 서로 부합하여 독자적 조형성을 보여준 작가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즉 작가가 원하는 바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능력을 평가한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유심히 관찰한 점은 작가의 독창성(獨創性, originality)이다. 독창성이란 새롭거나 기발한, 창조 또는 발명 작품의 면모를 뜻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독창성이 모든 예술의 감상과 평가에 중요한 기준이지만, 어찌 보면 독창성만큼 애매모호한 용어도 없을 것 같다. 그리하여 본 심사자는 과거의 유산을 토대로 작가 고유의 조형성을 표출한 작품을 물색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이 인간 메커니즘이 창조하는 시각물에도 인간의 보편성과 역사성이 존재한다. 다만 이를 어떤 방식으로 발현하여 개인의 독자성을 창출하느냐가 예술 창작의 관건이다.

      3. 정체성 모색과 변화와 발전 가능성
      무언가를 창작하는 작가가 지닌 가장 큰 부담감은 변화와 발전이다. 남과 다르게도 해야 하지만 이전 작업과도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늘 따라다닌다. 차별성과 변화,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그리고 동시대 미술에서 본인 작업이 논의되기 위해 일부 작가들은 시류와 유행을 따르기도 하고 아예 이를 외면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지필묵을 다루는 한국화 작가들에게 적용되는 직면 과제이다. 언제나 전통과 현대라는 두 개의 키워드 사이를 왕래하며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에 본 심사자는 작품 포트폴리오를 면밀히 검토하고 직접 면담을 통해 작가가 작업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작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무엇인지, 앞으로 추구하려는 점은 무엇인지 추적했다. 각자의 personality를 제대로 파악한 상태에서 진심을 다해 표현하고 싶은 바를 화면에 창출해야 정체성이 분명하되 호소력이 있는 작품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기준으로 심사를 마무리 한 상황에서 광주화루에 다음과 같은 평가 방식을 제안한다. 첫째, 심사위원이 심사 과정에서 서로 소통하는 방식을 일부 도입해야 한다. 1차 온라인 포트폴리오 심사는 개별적으로 진행하더라도 2차 신작 실물 심사, 3차 작가 면담, 최종 선정 단계에서 최소 1회는 심사위원이 전원 집합하여 수상자를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각각 심사위원이 치우친 사고를 하거나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고 점수 배당의 편차가 클 수도 있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올해부터 '3년경과 이후 재응모 가능‘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기 수상자라도 과거 3년 동안 출품 경력이 없는 작가는 출품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올해에는 과거 최우수상, 우수상뿐만 아니라 입선 수상작의 출품작이 1차 온라인 포트폴리오 심사, 2차 신작 실물 심사를 통과한 사례가 발생했다. 따라서 내년에 해당하는 9회 광주화루부터 ‘3년경과’ 항목을 ‘5년경과’로 변경하거나, 우수상 이상 수상자는 출품을 제한하는 규정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한국화는 한반도의 질곡의 역사와 항상 동행 해온 미술 장르이다. 해방 이후 민족성 수립과 현대성 모색이라는 화두를 해결해야 했고,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동시대 미술로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이번 광주화루에 출품된 작품에서도 작가들의 고민과 그 실체가 고스란히 목격되었다. 창작에 정답과 오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창작 주체가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면서 진솔한 마음으로 화폭에 옮기는 과정만이 존재한다. 아무쪼록 광주화루가 진정한 창작 주체를 발굴하고, 경계와 범주가 희미해진 한국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제도로 더욱 성장하길 바란다.
    • 심사위원 김선두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광주화루는 이제 한국화 젊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로망이 되었다. 8회에 이르는 동안 많은 젊은 작가들이 광주화루를 통해 화단 등단이라는 꿈을 이루었거나 자신의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다지게 되었다. 1회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선배 작가로서 단단한 기초와 신선한 실험이 돋보이는 작업들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물론 다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전남 수묵비엔날레와 더불어 광주화루가 남도에서 한국화의 바람을 확실히 다시 부응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대미술의 게임 방식은 앤디 워홀 이후 정서가 아니라 깨달음이 되었다. 앤디 워홀은 ‘내 그림은 껍데기가 다다’라고 했다. 엔디 워홀 이후의 현대미술은 ‘재료와 기법이 곧 컨셉’이라는 인식을 강화했다. 예를 들어 워홀의 캠벨 수프 작업은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깨달음을 실크스크린이라는 기법을 통해 드러낸 작업이었다. 이는 현대미술에서 기법 자체가 의미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품의 형식이 그 자체로 개념적 메시지를 내포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흐름은 정서적 공감에서 철학적 사유로 이동했다. 예술은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기교를 넘어 관객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얻는 과정 자체를 중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깨달음’이라는 개념은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작품에 있어서 깨달음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작품과의 조우를 통해 작가와 함께 관객이 새로운 사유의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깨달음은 논리적 사고와 직관이 결합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이를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구성된 이미지의 속성이 깨달음의 속성과 잘 만나는 것이다. 단순히 동양화의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철학적 의미를 어떻게 조형적으로 풀어낼 것인가가 핵심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모더니즘 회화’(Modernist Painting)에서는 회화가 점점 자율적인 매체로 발전하면서 ‘순수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단순한 형식적 순수성을 넘어 인문학적 접근이 중요해졌다. 한국화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여 단순히 전통적인 기법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사유를 통해 깨달음을 표현하고 더 나아가 삶을 반성하게 해야 한다.

      한국화 동네에서 부정적으로 회자되는 단골 메뉴는 1980년 우리 그림의 주체성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그림을 한국화라고 하자는 제안 이후 한국화는 명칭만 있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비아냥은 늘 한국화 작가들에게는 족쇄처럼 여겨지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며 이를 극복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첫째 낡은 방식으로 새롭게 그리기이다. 전통적인 방식 즉 수묵화와 채색화 등의 기법을 유지하되 현대적 감각으로 그리는 방식이다. 한국화의 기법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반영하여 작업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 기법을 활용하되 당대의 회화적 감각으로 한국화를 그리는 것이다. 아무도 그리지 않았던 소제를 과감하게 가져오고 기존의 한국화 기법을 더욱 발전시킨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미디어로 우리의 미학을 담아 그리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그림의 주제가 화선지에 먹과 장지에 먹이나 분채가 아닌 유화, 아크릴, 사진, 영상, 설치미술로 표현했을 때 그 주제가 잘 드러난다면 기존의 재료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현대적 미디어를 활용하여 우리의 미학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우리 그림은 보다 확장된 현대미술의 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동양 미학 베이스의 중국의 양푸동이나 쉬빙 그리고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나 한국의 서동호가 그 좋은 예이다.

      광주화루는 한국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우기에 어쩌면 낡은 방식으로 새롭게 그리기라는 첫째 방법으로 작가를 발굴하는 공모전이다. 이번 심사에서 만난 수상작가들의 작품은 탄탄한 기량과 다채로운 소제 그리고 주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서양화의 대척점에 있는 붓의 미학에 의한 작업이 적었다는 점이다. 세필에 의한 밀도있는 묘사가 많은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요즘 한국화 화단의 젊은 작가들 작품에서 유행하는 하나의 흐름이 아닐가 한다. 그러나 이 스타일은 한국화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우리 그림이 공간 예술인 동시에 시간 예술이라는 점에서 한국화의 미학은 필력이 동반된 깊이있는 선의 예술에 있다. 심사하면서 “지금 유행하는 것은 이미 한물간 것”이라는 옛 공모전의 심사평이 떠올랐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다양한 스타일의 참신한 작품을 만나고 싶다.

      결국 현대미술로서 지금의 한국화는 전통적인 방식과 현대적 감각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가능하다. 삶의 깨달음이라는 주제로 조형적 실험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한국화는 단순한 회화의 장르를 넘어 새롭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형식과 새로운 미디어가 만나 현대적 감각을 유지하며, 일상에서 만나는 자신의 깨달음을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것이다.
    • 심사위원 이진주
    •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교수


      광주화루 공모전은 한국화 진흥을 위해 2017년부터 광주은행이 마련한 문화사업이다. 현대미술계에서 활동하며 동시에 한국화라는 전통적인 시각예술의 성격을 가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주화루는 여타의 공모전과 달리 그 성격이 매우 분명하다. 한국화의 전통과 미래를 담는 보루가 되어 풍성한 문화적 유산을 일구어가고자 하는 목적으로 매해 공모전을 개최하고 수상 작가에게 높은 상금을 수여한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이 시대에 한국화라는 전통적인 회화 양식으로 동시대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의 숫자가 타 매체에 비해 적고, 그 안에서 한국적이며 세계적으로 역량 있는 작품세계를 갖추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기에 광주화루의 가치와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된다.

      6년 전 본인은 광주화루를 지원하고 수상한 작가로, 올해는 광주화루를 평가하는 심사위원으로 임하게 되었다. 한국화 작가로서 광주화루의 수상은 반드시 도전하고 싶은 공모전이었다. 이번 공모에 지원한 모든 작가에도 그럴 것이다. 스펙터클한 현대미술에서 우리의 지역적·역사적 예술적 맥락이 지금 한국의 젊은 작가에게도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미술의 방법론이 될 수 있음을, 오히려 세계적으로 더 특별한 가능성을 발견하길 기대하였다. 이러한 시각으로 이번 공모전을 심사하며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지원자의 작품세계를 살펴보았다. 평가 항목은 예술성, 독창성, 발전 가능성으로, 특히 작품의 ‘주제적 진실성’과 ‘조형적 독창성’을 눈여겨 보았다.

      1차 포트폴리오 심사에서 여러 작품 이미지와 작업노트를 통해 그들의 작품 세계를 입체적으로 평가하고자 했다. 디지털 자료이지만 자유형식의 포트폴리오이기에 작가마다 다른 개성과 깊이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수준의 차이가 뚜렷한 편이어서 20인의 2차 작품 심사 대상자가 쉽게 추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각자 주제에 대한 깊은 접근과 조형적 표현이 창의적 표현이 잘 드러나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2차 심사에서 20인의 대표 작품을 직접 보면서 회화적 특이성을 중심으로 평가하였다. 한국화라는 프레임 안에서 전통과 기법, 미학 등을 과의식하기보다는 그들의 대표 실물 작품 속에서 자신만의 조형적 언어를 구축하고 인상적으로 표현되었는가를 기준으로 심사하였다. 3차 심사인 10인의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각 작가의 태도와 진실성을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현재 작품세계의 첫 시작점을 물으며 그들이 경험한 삶의 리얼리티와 진실성을 알고자 했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작품의 개념과 형식의 독창성에 대해 들으며 작품과 부합하는지 판단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화와 이 시대의 관계에 대하여 자신의 작품을 중심으로 설명해달라고 질문하였다. 이미 우리에게 부여된 역사와 지역성, 제도 속에서 예술가의 고유하고 자유로운 창의성, 그 관계에 대하여 가늠하고 평가하고자 하였다.

      최종 심사가 끝나기 전까지 다른 심사위원은 서로 알 수 없을 만큼 개별적이고 공정하게 각 단계의 심사가 진행되었다. 최종 10인의 작가로 선정된 올해의 광주화루의 작가 명단을 보며 심사위원마다의 세부 기준은 달랐겠지만, 진정성과 독창적인 회화적 표현을 모색하는 작가들이 선정되었다고 판단했다. 숙명처럼 물성과의 사투를 벌이고, 공감각적인 삶을 시각적으로 감각하고, 미미하지만 끈질기게 자신을 붙잡는 질문들을 마주하고, 어떻게 감각하고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사회를 마주하는 개인의 역사를, 재현과 내면의 관계를 고민하는 그들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들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지독한 고민과 예술적 도전으로 한국화의, 아니 예술 그 자체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하길 바란다. 이를 위해 혁신적 역할을 해온 광주화루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 보다 적극적인 후원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김준기
    • 미술평론가


      한국화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풍경

      <광주화루>는 한국미술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프로모션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국가의 정치와 경제, 사회 모든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문화 영역 또한 철저하게 서구화한 대한민국의 미술계에서, 한국의 전통은 서양의 양식과 서사에 전복당한 지 오래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시대를 지내온 것은 제3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비슷하게 겪은 일이지만,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유독 한국의 서구화 현상이 극심한 것은 해방 이후 국가 재건 과정에서 나타난 편향이 가장 큰 원인이다. 더 멀리 올라가면 한국 전통미술의 계승과 발전이 지지부진한 것은 일제시대에 진행된 근대미술의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난 ‘동양화의 오류’에서 출발한다.

      ‘동양화’라는 개념 틀은 한국의 전통미술 양식과 서사를 담아내기에 부족한 것이었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극심한 왜곡을 초래한 원인이었다. 오카쿠라 텐신의 기획 아래 탄생한 ‘일본화’ 개념, 완결된 식민지를 경험하지 않은 중국의 ‘국화’ 개념에 비해, 식민지 조선에 ‘조선화’라는 명칭을 부여할 생각이 없었던 일제는 ‘동양화’라는 괴이한 이름을 지어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한국화’라는 이름으로 혁신을 모색해왔지만, 그것으로 역사 속에서 똬리 튼 동양화의 오류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자국의 전통적인 양식과 서사를 ‘동양’이라는 허황된 틀로 담아내려했던, 오염된 언어의 시간을 극복하는 데는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자리잡은 동양화의 빗나간 궤적은 개념의 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일제가 심어놓은 동양화는 일본화의 주류인 몽롱채 기법의 채색화였다. 동양화는 조선전통의 계승과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것은 ‘동양화=채색화’라는 등식을 성립시켰다. 해방 후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동양화는 채색화를 버리고 수묵화로 변신했다. 따라서 해방 후에는 ‘동양화=수묵화’라는 등식으로 일대 변신한 나머지, 조선전통의 회화적 계승은 채색을 배재한 채 수묵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먹과 모필과 종이에 대한 물신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선전통회화의 근대화는 납작하게 찌그러들고 말았다.

      평생을 왜색 화풍 시비에 시달렸던 박생광이 1980년대에 접어들어 80대의 나이가 되어서야 강렬한 조선전통의 채색화를 복원해 새로운 경지를 만든 사례에서 보듯이, 해방 이후 한국미술은 20세기 전반기 일제가 심어놓은 동양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데 긴 매우 시간이 필요했다. 1980년대 이후 한국화 영역의 다양한 실험과 혁신 과정을 거친 후, 21세기 동시대 미술계에서 한국화는 전통의 계승과 혁신이라는 프로젝트를 차근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광주화루>가 유의미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주류 미술계인 제도권 미술관과 상업 화랑 영역에서 한국화 장르를 경원시해온 시간이 적지 않게 흘러온 가운데, 광주은행의 공모프로그램이 한국화에 주목하고, 당대를 대표할만한 작가들에 주목하는 전시를 여는 것은 앞서 말한 여러 가지 난맥상을 풀어나가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화 영역의 예술가들에게서 나타나는 다양한 주제들은 매체 자체에 천착하는 기술결정론을 극복하고 서사 구축으로 확장하는 양상을 대표한다. 사건과 일상과 기억의 문제 등은 한국화 영역 예술가들의 보편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오세경은 장지에 아크릴릭 기법으로 재난이나 갈등의 상황을 드러냄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규범을 환기한다. 최혜연의 다매체 회화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의 총체로서의 자연을 숲으로 표현한다. 허용성은 한지에 드러나는 옅은 채색으로 매력적인 일상 표현의 성취에 도달한다. 전지홍은 고지도 형식을 빌어 기억과 장소의 관계를 탐색하는 유동적 주체를 이야기한다.

      김정옥과 김홍성, 함수지는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몇 가지 경로를 보여준다. 김정옥이 포착한 수족관 물고기에 빗대어 인간 군상을 은유한다. 김홍성은 인간의 살갗을 통하여 몸과 그 외부의 관계성에 주목한다. 함수지는 식물의 형상으로 인간의 감정선을 표현하는 초현실의 세계를 펼친다. 또 다른 일군의 작가들은 추상적인 언어로 한국화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기도 한다. 기민정은 한지와 먹의 매체 특성을 예민한 감성의 추상 언어로 표현해낸다. 박세진은 다양한 매체로 유기적 형상의 필선을 구사하여 생명 에너지의 흐름을 표현한다. 박형진은 격식을 벗어난 매체와 형상 표현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개념미술을 실행한다.

      2025년 봄에 열리는 <광주화루>는 21세기 들어 첫 4분 세기가 지나고 있는 시점의 한국화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동시대 한국미술계에서 보이는 보편적 현상들이 한국화 영역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하게 해준다. 그것은 주제와 매체의 다변화 양상이라는 보편적 현상이다.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소재와 주제의 다변화, 매체의 다변화를 향한 치열한 미술운동이 21세기 초반 한국화 영역의 전향적인 변화 양상으로 공진화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1백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 전근대 이후의 새로운 미술제도가 자리잡는 동안 전통을 잇는 회화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상당히 납작해졌지만, <광주화루>가 보여주는 바대로, 한국화는 서서히 동시대의 보편 서사와 감각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