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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인의 작가전

2회 수상작가

  • 대상. 박재철
  • 최우수상. 전은희
  • 우수상. 김민호, 김선영, 조민아

10인의 작가전

2018. 04. 11. ~ 05. 07.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6관
김민호, 김선영, 박병일, 박재철, 전은희, 정경화, 조민아, 진희란, 한상아, 한승협

제2회 공모전 비평

  • 전통 회화의 새로운 출발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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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진상 |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오늘날 동양화(혹은 한국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하기 난처한 경우가 있다. 일단 예술이론 측면에서 동양화, 그 중에서도 먹과 종이를 사용하는 동양화의 대표적 형식인 수묵화가 동시대 혹은 현대미술에서 다루는 드로잉이나 페인팅의 특정한 하위 장르에 불과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동양화는 특히 동아시아 국가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지배적인 회화 형식으로 천 년 넘게 발전되어 왔다. 서구에서 ‘잉크 페인팅’이라고 상당히 의미를 축소해 부르는 수묵화가 동아시아에서 실제로 차지해온 위상은 단순히 ‘페인팅’이라는 말로 전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예술적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이고, 나아가 정신성, 종교, 정치적 세계관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양화는 단순히 회화가 아니다. 동양화가 지니는 복합적인 성격을 이해하려면 다른 문화권에서 예술적 표현이 단순히 독자적인 예술 형식을 넘어선 문화-종교정치적 기호 체계로서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체계의 정수를 압축해놓은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다. 예컨대, 아랍 문화권의 아라베스크나 슬라브 문화권의 아이콘을 떠올리면 이러한 형식들이 단순히 문양이나 목판 초상으로 축소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채색화를 포함해 주로 종이 위에 그리는 동양화의 구성이 서구의 캔버스가 몰고 온 재료인식론적 변화에 비해 훨씬 먼저, 더 효율적으로 개인의 사상과 세계관을 실어 나르는 혁신적 도구로 동양 사회에 널리 보편화되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동양화의 전통은 그 자체로서 인류사적 의의를 띠게 된다. 여기에 서구 회화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회화적 질료의 존재론은 동양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속성일 뿐이다. 젊은 세대 작가들이 동양화에 갖는 난처함은 대체로 그것의 ‘낡음’에서 비롯된다. ‘낡았다’라는 표현 속에는 무기력함, 변화 없음, 시대와 어울리지 않음, 새로운 형태를 생산하지 못함 등의 뉘앙스가 모두 담겨 있다.
    그러나 동양화가 처음부터 낡았던 것은 아니다. 동양화는 각 시대마다 고유한 시대정신과 태도, 기술적 변화, 정치적 관점들을 반영해왔다. 한·중·일의 그림들은 모두 같은 재료와 매체들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철학적, 회화적 맥락을 보여준다. 이러한 종횡의 다양성 위에 동남아시아의 회화까지 그 범위를 넓힌다면 매우 폭넓고 역동적인 사상들이 만들어내는 차이의 거대한 파노라마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서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근대 및 동시대 미술의 규모와 그것이 뿜어내는 창조적 에너지가 지금까지 동양 미술을 압도해온 것은 다양한 정치-사회경제적 측면을 고려해보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압도가 장래에도 동일하게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관점이다. 동양화의 전통과 사상을 되살리는 것은 반드시 이전의 회화를 답습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완전히 새로운 당대의 생각과 경험을 가시화하는 것이 장래의 동양화가 추구하는 핵심적인 가치일지도 모른다. 이번 광주화루에서 만난 작가들은 바로 이러한 주제 의식을 그대로 작품 속에서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종이를 기본적인 회화의 바탕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먹이나 전통 채색물감을 매체로 사용한다. 이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의식은 동양화에서 말하는 사의寫意를 어떻게 드러내느냐다.
    2차 심사에서 선정된 10인의 작가는 공통적으로 동양의 전통 매체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자각은 전통 매체가 수반하는 ‘낡음’에 대한 곤란함을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맥락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태우게 한다. 예컨대, 김민호는 사진과 수묵화를 병행하면서 전통적인 수묵화의 소재들, 즉 산과 강, 바다와 섬을 관념적인 대상으로 추상화하는 독특한 방법론을 보여준다. 수묵화의 경우, 그는 풍경을 여러 번에 걸쳐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함으로써 모호하게 분절된 화면을 만들어낸다. 그의 동양화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수없이 다양한 각도에서 대상을 촬영해 중첩 인화하는 사진의 기계적 프로세스와 일맥상통한다. 한승협 역시 흑백사진으로 기록한 실제의 풍경을 점묘기법으로 화면에 옮기는 정교한 과정을 통해 동양화의 전통적인 기법을 재해석했다. 이러한 극사실적 접근과 달리 바위나 나비와 같은 화면의 서사적 소재들은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상징적 의미들로 충전되어 있다.
    한편 동양화를 리얼리즘의 동시대적 변형으로 확장하는 시도들도 있다. 조민아는 동양화의 전형적인 재료들을 사용해 노동자들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사회적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 콜라주와 병치를 과감하게 동원하는 동시대 회화의 특징적 요소들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박재철은 가족과 집을 소재로 그린다. 그에게 종이와 채색은 가족이라는 주제 안에서 떠오르는 상처, 외로움, 연민 같은 극적인 감정들을 가장 잘 시각화할 수 있는 재료다. 그는 지필묵 회화의 낡음을 극복하고 동시대적 매체로서의 가능성, 동시대적 공간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동양화의 사의적 표현에서 서구 미술이 추구하는 높은 밀도의 물질적 회화성까지를 폭넓게 다룸으로써 새로운 회화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작가들도 있다. 김선영의 회화는 제스추얼한 붓질과 겹겹의 레이어들, 그리고 심도 있는 색채로 일견 유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버려진 공간을 주로 다룸으로써 사생과 사색을 통해 체화된 감정을 표현한다. 스며드는 종이의 성질은 이러한 감정적 깊이를 다루는 데 적절한 바탕이 된다. 전은희 역시 서구 회화의 중후한 채색을 동양화에서 구현한다. 그는 사람들이 사는 주거 공간을 주제로 다루면서 타인 그리고 그들과 공유해야 하는 오래된 것들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들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회화적 차별성은 지필묵의 추구에서 비롯되는 독자적인 해석과 시각적 설득력에 기인한다. 정경화의 작품 역시 수묵 풍경을 그릴 때 죽필을 사용해 과감하고 독특한 질감의 화면을 구현해냄으로써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회화적 접근법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화면의 구축적 마티에르를 놓고 본다면 그의 작품은 박병일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픽셀 형태의 점묘기법과 서로 매우 다르면서도 흥미로운 비교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추상 표현적이고 신체적이라면 후자는 매우 평면적이면서도 건축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박병일은 시끄러운 도시 풍경을 정제되고 조용한 수묵적 미감으로 재구성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방식은 작가에 따르면 자신의 취미인 레고 쌓기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한상아의 현대적이면서 간결하고 상징적인 산수는 작가 자신이 미디어를 통해 본 풍경들을 혼합해 재구성한 것이다. 공상이나 불안 같은 감정들을 먹과 종이의 스며드는 성질을 이용해 극대화하려는 그의 작업은 오늘날 동양화가 미디어에서 받는 대중적 이미지의 영향을 잘 보여준다. 반면에 진희란의 회화는 전통 산수화가 지닌 사의적 표현의 깊이를 전승하고 동양화의 독자적 구도와 원근법, 그리고 기법의 차별성을 고수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진지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들의 작품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통적인 동양 회화의 고유한 특질에 대한 존중과 깊은 애정이다.
    세계는 이제 각 문화적 주체가 자신의 고유한 사상과 예술적 정체성을 좀 더 천천히 그리고 세세하게 재평가하고 그것의 가치와 의의를 복원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동시대 미술은 특정한 트렌드가 아니라 인류의 삶과 문화적, 역사적 기억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폭넓은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동양화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이전과는 다른 입각점과 태도, 비평적 방법론이 필요하다. 광주화루가 이러한 전환을 촉발하고 고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