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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인의 작가전

6회 수상작가

  • 대상. 고현지
  • 최우수상. 손승범
  • 우수상. 김태형, 김준기, 김현수

10인의 작가전

고현지, 김민지, 김신혜, 김준기, 김태형, 김현수, 문기전, 손승범, 임철민, 정덕현

제6회 공모전 심사평

  • 심사위원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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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회 광주화루 심사 총평


    한국의 대다수 미술상은 그 성격이 지극히 애매모호하다. 개별 상들이 지닌 정체성을 파악하기가 무척 곤혹스럽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상들이 도열해 있다. 물론 모든 상들이 저마다 특별한 개별성, 차별성을 온전히 지니기가 어렵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상을 제정했다면 그 상이 지향해야 할 성격, 이념 같은 것들은 최소한 유지되어야 하고 그것을 견지하려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상을 주관하는 측이나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들이 분명 숙지하고 공유하여야 할 것이다.

    광주화루 공모전은 그 성격이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선정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지 분명한 편이다. 대상을 한국화 혹은 동양화 장르로 국한하고 이 장르, 매체 안에서 탁월한 작업을 선별해 이를 수상하려는 선명한 목표가 있다. 물론 ‘좋은 작품’을 보는 시각, 견해, 판단은 저마다 다르고 그것을 분명하게 지시하거나 표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작품의 질에 대한 판단이 없을 수 없고 그것이 무시된다면 미술문화는 부재하다고 하겠다. 여기서 과연 작품의 질을 보는 안목과 개별 작가들이 한국화 작업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인식과 재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를 통해 담아내고자 하는 내용 등에 대한 총체적인 판단을 거쳐 작가를 까다롭게 선별해내려는 시도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그것이 과연 심사라는 제도를 통해 관철되고 걸러질 수 있는가에 대한 점검은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현재 광주화루 공모전은, 타 공모전도 마찬가지지만 매우 느슨한 고리로 선정기준이 제시되어 있고 심사위원들도 매해 바뀌고 따라서 그로 인해 해당 심사위원들의 안목과 취향, 가치관에 따라 매번 출렁일 수밖에 없다. 불가피한 결과다. 그래도 작품이 뛰어난 작가가 선별될 수 있는 확률은 높겠지만 과연 광주화루 공모전에서 뽑아내고자 하는 작업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에 답하기는 곤혹스럽다. 일관되거나 단일한 기준을 제시하자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겠지만 최소한 광주화루 공모전이 한국화 작업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의 새로운 가능성과 활로는 또한 어떻게 제시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비교적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어떤 식으로 구현해내느냐 하는 것이 향후 과제이고 문제점이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광주화루 공모전은 이곳의 많은 한국화 작가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공모전이다. 무엇보다도 수상금액이 타 공모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척 높은 편이다. 다수 작가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편이고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이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큰 장애이기에 수상 금액은 작가 개인들에게 무척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러니 상금은 단지 상금에 머물지 않고 수상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작업을 해나가는 데 있어 가장 큰 혜택, 도움을 주는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 광주화루 공모전은 작가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여러 가지 시그널을 미술계에 주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한국화 장르의 작가들 중 작업이 좋다고 평가받는 웬만한 작가들이 그간 거의 다 출품했고 또 그들 중 상당수가 선정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인력 풀은 한계에 부닥치고 있고 해가 갈수록 선정할 만한 뛰어난 작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게 된다. 타장르에 비해 한국화 작가들의 숫자가 적은 것이 우선적인 요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를 찾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 놓여있다. 그러니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도 향후 과제라고 생각된다.

    올해 광주화루 공모전에 최종적으로 올라온 작가 10명은 비교적 오랫동안 작업을 해 온 작가들이고 이미 작가적 역량을 확인 받아온 이들이 다수다. 이전에도 이 공모전에 출품하고 수상한 작가들도 있었다. 새롭고 참신한 작업, 한국화에 대한 독창적인 독해나 발랄한 응용 등을 접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올해 선정된 수상 작가들은 재료를 다루는 솜씨나 기법의 탄탄함이 우선했고 주제 역시 신선한 편이었다. 향후 보다 더 낯설고 이질적이면서도 다양한 한국화 장르의 새로운 놀라운 지도를 그려나가는 작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며 이들을 추려내는 선정 작업의 정교한 장치도 요구된다는 생각이다.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 심사위원 이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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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화루 공모전 심사평

    아시아 전통적 기법의 회화인 한국화는 근대개항과 일제강점기, 해방과 남북분단, 산업화와 현대화를 거치며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계승과 더불어 경계를 확장하고 담론을 다양하게 생산해왔다. 특히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 서양미술이 국내로 유입되어 서양미술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높아지면서, 화단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현대화의 거센 바람이 전통적 화법을 고수하는 한국화가의 기를 꺾는 형세가 되었다. 미술대학에서도 서양화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으며, 서양화 위주의 실기 수업과 이론 수업들로 커리큘럼이 구성되었다. 화단에서는 서양화 기법을 사용하여 토속적인 한국 정서를 표현하는 동도서기 즉 한국적 인상주의 계열의 작품이 실험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서구 추상미술이 도입되면서 작가들은 구상미술에서 추상미술로 넘어가는 실험을 하게 되었으며, 당시 추상은 현대적이고 구상은 진부하다는 편견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화와 서양화의 조우와 갈등의 구조 속에서도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은 의재와 남농이라는 남종화의 거장을 배출한 지역답게 수묵담채를 중시하는 남종화의 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수묵은 시대를 담지 못해 진부하다는 일부의 혹평을 감내하며 굳건히 전통을 지켜낸 것이다.

    한편 21세기에 들어서면 한국화단의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젊은 화가들 사이에서 한국화의 기법과 정신을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방식으로 현대성을 찾기 위해 한국화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세대 작가들이 한국화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서양의 이성주의적 합리주의 문화는 한계에 다다를 때마다 극복을 위한 방법으로 타 문화권 중에서도 자연주의적 사상을 강조하는 아시아의 불교와 도교의 이론을 차용해 왔다. 오히려 서양에서 아시아의 문화와 사상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0년대 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불교사상서와 도자와 장자에 대한 방대한 연구서를 보고 놀란 경험이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이렇다 할 전문 연구서가 출판되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시아인이 아시아 연구를 위해서 오히려 서양에 가야 했던 시절이었다. 특히 서양의 20세기 현대미술은 아시아의 서예와 수묵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서양미술의 원근법과 명암법과 달리 아시아의 수묵화는 먹의 농담만으로 풍경이 그려지고 공간이 만들어진다. 서예는 행위만으로도 예술이 되었으며, 퍼포먼스 일종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대상의 재현보다 관념을 중시하며, 표현보다는 절제를 추구하는 수묵화와 서예가 그들에게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호남지역이 한국화의 고장으로 광주는 한국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갖고 있다. 이에 광주은행이 지방은행으로서 그 소임을 다 하기 위해 선두에 나선 것이다. 광주화루 공모전은 한국화의 전통성을 기반으로 동시대 미술로서 한국화의 새로운 위상을 국내외에 세우기 위해 광주은행이 2016년부터 우수한 한국화가를 선발하는 문화사업이다.
    화루’란 명칭도 조선 후기 문인화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제자들이 모여 솜씨를 겨룬 화가 그룹인 ‘회루’의 ‘회’를 ‘화’로 바꿔 만들었다고 한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하는 광주화루 공모전은 작금의 세계 화단과 한국화단에서의 한국화 현상에 주목하나, 향후 글로벌 작가로 성장할 작가 발굴과 육성에 더 방점을 주어야 한다. 따라서 작품 선정의 기준을 한국화의 미래 가치 창출을 위한 실험성과 창의성에 두었다. 또한 한국화 전통의 수용과 재해석이 독창적인가를 중요하게 보았다.

    고현지의 <정돈된 사회>는 나무와 사람 등 소소한 일상을 노래하는 소재 선택과 차분한 분위기의 수묵화 작품이다. 다른 채색화 작품에서 보여주는 세밀한 묘사의 집요함이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종이에 먹의 농담과 여백으로 그리는 전통적인 방식 또한 한국화에 대한 열정을 느끼게 한다. 인물과 나무 등의 주제를 화면 중앙에 집중해서 배치한 평면적인 이야기 전개 형식이 독창적이다. 이에 작가는 사생 여행에서 채집한 작은 이야기들을 재구성한 구도가 자신의 작업이라고 한다.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단편적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의 상대성, 다양한 인과관계로 얽힌 복잡한 삶의 구조를 표현하려 했다”고 말한다. 세밀하게 그린 그녀의 작품은 수묵화의 우아함과 장인의 완성도 높은 내공과 품격이 느껴진다.

    손승범의 <사라지거나 자라나는> 장지의 채색화는 사유적이며 초현실적이다.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거리트’의 작품이 연상된다. 서양의 고대 조각상과 평범한 식물의 이질적인 물체의 조합된 이미지의 중첩은 낯설고 기이하다. 수묵채색이라는 재료와 기법에 충실한 한국화이지만, 매우 독특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그렸다. 주제와 배경, 구성상의 특징 등이 초현실주의 기법인 ‘데페이즈망’을 생각나게 한다. 사물들을 일상적인 풍경에서 떼어낸 후 확대하고 축소하여 이질적인 환경으로 옮겨 상이한 만남을 연출한다. 결과적으로 작품의 이미지는 구상적이지만, 그가 긍국적으로 말하려는 작품의 주제는 개념적이며 추상적이다. 즉 대상과 대상의 병치를 통해 회화의 환영적이고 재현적인 공간을 거부하고, 추상적인 여백과 구체적인 이미지의 대비로 회화의 공간이 확장되고 상징적이고 서사적인 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김신혜는 주로 생수 페트병, 와인 병, 음료수 캔 등 현대소비사회의 상징적인 오브제와 라벨디자인를 소재로 채색화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도시의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상품과 라벨이 결합된 개성 넘치고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업이다. 이번 는 흰색의 장지 위에 화면 중앙의 투명한 펠트 병과 붉은색의 알파벳 상품명이 그려진 작품, 우리가 흔히 보는 팝아트 계열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화면 하단에 크게 펼쳐진 주홍빛의 강렬한 저녁노을 풍경 이미지는 도시와 자연, 극사실과 추상이라는 우리의 관습적인 편견과 상식을 뒤집고 만다.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화이트 계열의 차분하고 세밀한 묘사와 붉은색의 추상적인 저녁노을과의 대비를 통해 나타내려고 한 그녀의 의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외에도 이번 공모전에는 한국화의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등의 한국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시사하는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재료와 이미지의 콜라주 기법, 종이와 LED 전기 기구의 접목, 두텁고 짙은 채색법 등, 한지에 생동감을 살리려는 실험적인 작품들이다.

    또한 한국화의 정신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관념적 산수화와 사의적 추상화 계열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공모전 특징은 대부분의 참여작가가 지필묵이라는 한국화의 전통적인 재료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주제와 소재 면에서는 영상 세대답게 발랄하며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이 많았다.

    다만, 작가당 두 점을 제출하는 공모전의 특성상 두 작품만으로 작가의 역량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았다. 일필휘지 즉 점, 선, 면 하나로도 작품 전체를 가늠할 수 있다는 한국화의 특성에 무게를 실었다고 해도 평가 자료가 너무 부족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온라인에 이미 공개된 참여작가의 자료와 작품 등을 참고하여 심사의 공정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 심사위원 정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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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화루 심사평

    한국화를 그리고, 보고, 가르치는 일에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아직 한국화가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서는 머뭇거리게 된다. 한국화를 규정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그럴수록 한국화는 더욱 멀리 달아나는 것 같다.

    미술의 지평 속에, 회화의 지평 속에 한국화가 있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인식은 그 지평을 외면한 채 특수성이나 당위성 같은 미술적이지 않은 기준으로 한국화를 바라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당위들을 가장 부자연스럽게 느끼는 이는 다름 아닌 작업의 길에 한국화를 운명처럼 받아들여 버린 작가들이다. 어떠한 매체라도 자신을 자족시키려는 인력이 있을 것이다. 매체라는 몸의 역사성은 작업의 과정뿐만 아니라 결과로서의 작품감상의 순간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한국화의 경우 그러한 인력이 유독 센 것이고, 작업은 늘 위태로운 경계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작가란 그 인력의 끝단에서 너머를 향해 부단히 운신하여 미지의 영역에 가 닿으려는 존재이어야 한다.

    이번 광주화루를 심사하면서 매체에 종속된 태도보다는 매체의 끝에 서서 그 너머를 마주하려는 태도와 자신의 삶의 모습과 세상에 대한 생각들을 진솔하게 표현하려는 작가의 태도를 살피려 노력했다. 1차 포트폴리오심사, 2차 실제 작품심사를 거쳤고, 특히 3차 인터뷰 심사를 통해 작가의 목소리를 마주하면서 한국화 작가들의 미술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에 적잖은 감동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작가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나 여기서는 입상자 중 인상 깊었던 몇 명의 작가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고현지의 회화는 일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비가시적 세계를 감촉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발묵과 필선의 운용, 그리고 풍경을 구성하는 자연물과 인물의 묘법을 고전 회화의 어법에서 가져왔지만, 작가는 고전을 천착하기보다는 지금 작가가 마주하는 현실의 비의를 담담하게 펼쳐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안개에 쌓인 공간 속에 있는 인물들은 느슨하게 관계하며 미지의 사건 속에 있다. 모든 것은 알 수 없이 모호한데 그 가운데서 유령같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산수화, 인물화의 전통과 지필묵이라는 매체의 관념적 속성이 현실의 이면에 존재하는 비가시적 리얼리티와 만나는 흔치 않은 경우라 하겠다.

    손승범의 회화는 한국화와 서양화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다. 재료와 기법은 전통적인 것에서 출발하였으나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은 서구적 회화의 어법을 다분히 수용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대상들, 이를테면 잡풀이나 키치적 석상, 돌 등은 작가가 마주하는 폭력적 사회구조 속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대변한다. 작가는 이것을 화면 전면에 극사실적 묘사를 통해 견고하게 배치하고, 다른 이미지와 중첩시키는 화면구성을 통해 상징성과 기념비적 속성을 부여한다. 그의 회화에서 소외된 존재들은 마치 서구고전 회화 속의 성상들과 같은 지위를 부여받는다.

    김태형의 작업에 대한 첫인상은 회화적이기보다는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만화적인 것으로 보였고 다분히 상업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인터뷰 심사에서 작가와 대화하면서 한 가정을 꾸리는 생활인으로서 작업을 삶과 일치시키고 삶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작가의 진솔한 태도를 마주하고 처음의 오해를 거둘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그려내는 미니어처화된 사물들로 이루어진 풍경은 관념적 사고에 눈 돌릴 틈 없이 삶의 구체성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하다. 화면을 구성하는 집요함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삶에 대한 긍정에서 나오는 솔직함과 명랑함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김준기는 출품한 작가 중 다루는 매체가 한국화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거울을 긁어낸 흔적을 led전구로 투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그의 회화는 지필묵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으나, 동양화의 필법을 출발점으로 하고 동양미학을 근간으로 삼고 있어서인지 서구회화의 풍경화와는 다른 명상적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아버지의 부재라는 개인적 서사에서 출발했던 작업은 최근의 작업에 이르러 사회적 소외의 문제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매체의 확장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지만, 여전히 동양적인 미의식과 한국화의 장르적 속성에 대한 존중을 견지하고 있는 가운데 개인적 서사를 사회적 서사로 확장해 가고 있는 점을 주목하였다.

    김현수는 유년기를 보냈던 제주도의 풍경에서 비롯된 기억의 표상으로서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제주도의 풍경을 원형으로 하였으나 특정한 장소를 그리기보다는 생의 순간들에서 길어 올린 감정과 감각 같은 것으로 풍경을 재구성하고 있다. 작가 노트에서 한국화의 고유한 공간표현과 장지에 쌓이고 스미는 물성에 대해 밝히고 있듯이, 화면은 원근이 소멸되고 평평하게 펼쳐져 있으며 마치 헝겊 조각을 기워내듯 풍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고 오랜 시간 붓질의 반복으로 선염하여 정서적 감흥으로 가득한 회화성을 획득하고 있다. 김현수의 회화작업에서 주목할만한 것이 또 있다면 한국화 매체의 물질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혀 고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발현된다는 점에 있다. 매체를 존중하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 작가의 고유한 채취가 발현되고 있고, 활달하고 단호하지만 숨죽인듯한 고요함이 있어서 더없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입선작에 선정된 작업 중에선 ‘눈치인간’ 연작을 선보인 정덕현의 작업을 주목하여 보았다. 단조롭고 어눌한 형태로 그려진 그의 초상화는 구체적 인물을 재현한다기보다는 ‘눈치’라는 어찌 보면 사소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표정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의 속내를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이번에 출품된 작업들 중 가장 눈치를 보지 않은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한국화에 덧씌워진 매체에 대한 무게감이 없고, 현대미술에 대한 자의식도 걷어내 버린 상태에서 오로지 자신의 체험과 생각으로만 우직하게 밀고 나가고 있다. 투박하고 어눌한데 오히려 거기서 정직하고 진솔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서두에서 밝혔듯 나는 한국화가 어떤 특정한 매체라는 시각을 전제하고 작가를, 작업을 보려는 태도보다는 여느 매체를 다루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매체를 보듬고, 때로는 그것에서 멀어지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고, 세상에 대한 생각들을 나름의 방법으로 해명하려는 작가들의 태도를 중심으로 작업들을 보려고 노력했다. 무엇이 한국화인가, 또는 이것은 한국화인가라는 시선 속에서 정작 보아야 할 것, 이를테면 그림에서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는 삶의 보편적 가치와 아름다움은 가려지는 것 같다.

    이번 광주화루 심사를 통해 한국화 매체를 다루는 많은 작가들이 가진 고민의 모습들을 살펴볼 기회가 되었고 예전보다는 좀 더 분방하고 자유롭게 한국화를 사유하며 자신의 작업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작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화 매체가 과거와 연결되어 있기보다는 현재에, 그리고 작업을 하는 작가라는 주체에 먼저 연결되어 있다는 데에 눈을 돌리고 나면 작업들은 보다 아름답고 풍성한 것들을 내어주는 것 같다. 이번 광주화루에 출품한 모든 작가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재호(세종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