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작가
광주 화루 공모전이 어느덧 일곱 번째를 맞이했다. 1차 포트폴리오 심사, 2차 신작 출품 심사 그리고 3차 작가 인터뷰 등 일련의 심사 과정에 미술대학 교수, 전시 기획자, 미술 평론가, 작가 등 미술계 각 분야 4명의 심사위원이 독립적으로 100명에 가까운 지원 작가들의 생각과 작품들의 면면을 살폈다.
‘광주 화루’는 광주가 한국화의 전통과 맥을 지키는 보루가 되어 풍성한 문화적 유산을 일궈가겠다는 취지의 광주은행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한국화의 미래와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할 역량 있는 작가들을 발굴, 지원하는 공모전이다. 이에 걸맞게 한국화 작가로서 발전 가능성에 무엇보다 큰 비중을 두고 함께 제출된 작품의 예술성 및 독창성 또한 방점을 두어 심사를 진행했다.
특히 ‘광주 화루’ 공모전의 취지를 살리고자 심사위원 저마다의 판단에 의해 소위 한국화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작품은 과감히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는 우리 특유의 문화현상인 동‧서양이 혼재된 여러 예술 형태에서 전통성이 강한 한국화의 정체성을 보다 분명히 하려는 특단의 조치였다.
본 심사 과정 내내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있었으니 다름 아니라, ‘동시대 작가로서 다른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였다. 아울러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전통의 재해석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시금 새롭게 다가왔다.
전통은 ‘전할 전傳’, ‘줄기 통統’으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계통이라는 속뜻을 가지고 있다. 지난날 찬란했던 어느 한때의 유물, 유산이 지금도 물질적, 정신적 맥락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에 ‘전통’이라는 말에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도 진행 중인 현재진행형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전통의 생명력에는 단순히 옛것을 전하며 이어가려는 소극적 태도의 전승傳承과 달리 이를 적극적 자세로 수용하면 장차 창작을 위한 밑거름이 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세상의 그 무엇도 배우지 않고 이룰 수 없으니 이는 과거 현재 미래가 큰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화 정체성의 근원도 고전 속 전통 회화에서 찾을 수 있다. 고전이란 비록 옛 법식이기는 하나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을 말한다. 시대마다 많은 작가에 의해 무수한 그림들이 그려졌으나 지금껏 사라지지 않고 남겨졌다는 사실은 그럴만한 가치를 지녔기에 잘 보존되어 온 것으로 봐야 한다.
이에 고전 작품에 대한 연구와 화법 수련은 창작하는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필연 과정으로 배움의 폭과 깊이는 물론이고 그를 대하는 진정성에 따라 출발점이 달라질 수 있다. 작품을 마주할 때 작가는 대개 감상자의 입장보다 그림을 그리는 제작자의 위치에서 작품을 분석해 살피는 경향이 있다.
예술작품은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되어 내용이 형식을 앞서기도 하고 반대로 형식이 내용을 주도하기도 하며 탄생한다. 두 요소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미술작품의 제작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작품의 내용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로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사상이나 관념 등을 말하며, 형식은 어떤 대상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조형 원리에 따라 여러 시각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을 일컫는다.
소위 고전 또는 명화라고 하는 작품은 이러한 내용과 형식의 긴밀한 관계, 조화가 당대는 물론이고 후세에도 법도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기에 귀히 여겨지는 것이다. 흔히 옛 법을 익히면 그 법에 갇혀 생각이 낡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우려하나 그것은 개인의 역량에 따른 기우에 불과하다. 작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하려면 자신의 분야에 있어 기본기를 고전으로부터 습득, 연마해 그 기량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느 분야의 예술 행위에도 예외는 없다. 창의력 발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3차에 걸친 심사 과정으로 공모 지원 시 제출한 작가들의 작업 노트를 통해 작가들의 의식 세계를 비롯해 작업 내용과 표현형식 등을 찬찬히 헤아렸다. 주제 의식을 표출한 어떤 작품도 결국에는 감상자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예술 행위에 있어 궁극의 목표는 소통을 통한 공감이다. 작가든 감상자이든 각자가 갖고 있는 공감 능력에 의해 예술이 예술다워지기 때문이다.
지원한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주제를 여러 형식을 통해 화폭에 펼쳤다. 그러나 몇몇 작품은 비록 회화로써 완성도는 높았으나 한국화 범주에 넣기에 애매한 작품도 있었고, 2차 작품심사에 신작 출품의 규칙을 어겨 작가와 작품이 훌륭했음에도 중도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심사 후 아쉬움으로 남았다. 본인은 심사를 진행하며 지원 작가와 출품작에 대해 세 가지 주안점을 두고 살폈다.
첫째, 무엇보다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한 작가의 소견에 주목했다.
아직은 대부분 청년 작가로 정체성에 대한 탐색과 모색의 시기이지만 이는 향후 작업 방향을 결정짓는 주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둘째, 작품의 질을 결정짓는 작가의 기본역량 또한 중요한 심사 대상으로 삼았다.
한국화에서 지, 필, 묵 등 도구와 재료를 다루는 기본기는 오랜 숙련 후에 얻어지는바, 그에 대한 연구와 수련은 끊임이 없어야 자기 것이 된다. 이때에야 비로소 화면 앞에서 자신감이 생기며 자신감은 곧 창의성으로 이어진다.
셋째,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한 작업 전개 과정과 태도를 눈여겨봤다.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이다. 미술에서의 조형 언어도 이와 같아 점, 선, 면, 색, 공간 등 조형 언어의 적절한 표현과 구사 그리고 작품 완성도는 작가와 감상자 사이의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모전은 주최 측의 공모 취지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한다. 지원자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평가받는 자리일 뿐이다. 그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길 바라며 이번 7회 광주화루에서 10인의 작가로 선정된 김종규 작가, 김현호 작가, 김형욱 작가, 박경진 작가, 박진주 작가, 백혜림 작가, 이시원 작가, 이윤빈 작가, 이향아 작가, 허현숙 작가 등 지원한 모든 작가분께 격려의 말을 전한다.